>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이름 박영덕
상세 date : 2018.10.12 , hit : 32
제목 왜 목회자들은 예배당의 규모와 장소에 목을 매는가? 첨부화일
          

왜 목회자들은 예배당의 규모와 장소에 목을 매는가?

 처음 개척을 시작할 때 누구나 교회 설립의 입지 조건을 따져서 장소를 선정하고 교회를 세운다.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 더 많은 전도와 교회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정확하게 그 장소가, 혹은 장소 선택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생각들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정한 어떤 특정한 장소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한다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자기의 뜻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목회자들이 예배당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장소를 중심으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을 보다 원활하게 이루기 위해서일 것이다. 목회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일 것이다. 그 성장을 위해서는 예배당이 세워질 장소의 조건이 자신의 바람을 이루는데 여러모로 유익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장소 선정에 있어 가장 우선되는 조건은 물론 주변에 교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설령 교회가 있다하더라도 교회가 성장할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라면 얼마든지 주저하지 않고 예배당을 임대하거나 건축할 것이다.(성경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보다 일단 고지확보 차원에서 임대나 건축을 고려하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지만, 정말 원하는 곳에 예배당을 임대할 만한 형편(금전적인 이유)이 못되어 하는 수없이 세워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최대한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주변 조건에 맞추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적잖은 경제적 부담을 안고 개척을 하거나 무리한 건축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그것을 이유로 자주 이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초대교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교회의 설립은 시대를 초월한다고 본다. 즉 교회가 세워지는 이유와 목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때 초대교회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세워졌다. 거기가 땅굴이 되었든 왕궁이 되었든 조건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건물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회가 사람이며 그래서 사람들의 모임은 어디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 복음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지역적인 제한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당시 아무도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은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또한 듣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소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디든지 믿는 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곧 교회가 되었다.


하지만 점차 예배당이 보편화되어지면서 교회는 지역 조건에 맞추어 세워지게 되었고, 교회는 그런 외적인 조건들을 잘 갖추어 세워졌을 때 부흥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묻고 싶은 것은 예배당의 위치가 교회부흥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예배당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지금 보면 거의 목숨을 건 수준이다. 모든 재산 다 털어서 굶더라도 궁핍한 삶이 계속되더라도,  예배당 자리만 잘 선택하면, 예배당만 잘 건축하면, 예배당만 잘 꾸미면 대박 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자는 식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스스로 위로할 것이다. 주를 위해 헌신한 대가(?)가 언젠가는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어느 신도시에 예배당 그럴듯하게 건축해 놓았더니 전도 안 해도 한 주에 한달 만에 수십, 수백 명이 몰려오더라고 간증(?)까지 한다.   
왜 이런 현상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혹은 당연한 것처럼 된 것일까? 
행동은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뜻이나 계획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행동은 곧 사고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목회자들이 예배장소와 그 규모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배장소와 그 규모에 대한 집착이라는 행동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은 그 생각에 그것만이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발상과 현상은 세상의 경제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어떤 사람이 장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장사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나는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다. 한번도 장사를 해 본적도 없고 창업을 한 적도 없어서 어떻게 장사를 해야 잘 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기본 원리만은 알 수 있다. 
먼저 시장조사를 할 것이고, 어떤 입지 조건이 자신이 시작하려고 하는 장사에 알맞은지 검토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물론 자금도 포함된다.


자신이 가진 자금범위에서(물론 모험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인테리어로 꾸밀 것인가를 계획할 것이다. 그 다음은 서비스의 질이나 운영능력 등이 성공을 좌우하는 조건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 반짝 아이디어까지, 혹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첨가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업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교회를 세우고자 계획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말 교회가 이같은 세상의 경영이나 창업의 원리를 따라 시장 경제원리에 따라 세워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세상의 것과 교회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사용하는 말이 기독교식 말이고. 분위기가 종교적인 분위기가 나고, 외형이 또한 종교적이면 세상과 구분된 것일까? 
그 내용(복음의 질)은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상 원리에 입각해서 세워진 교회가 그 안에서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 자체가 성경적이 아닌데 가르치는 내용이 성경적이라고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여전히 교회는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교회 중심이 되려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생각에서부터 교회의 계속적인 유지까지 포함해서 모두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만약 예외를 둔다면 이는 교회를 자기편의 주의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본질적인 문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이처럼 교회가 세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교회의 본질이나 그 생리를 모르고 있거나 세상적인 가치관에 입각해서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의 수고한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나.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싶다.(물론 누구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너무 보편화되어져서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아마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교회는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물론 하나님께는 계획된 사실이지만) 교회는 자연발생적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사람의 작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람이 교회를 세운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설립과 유지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지역에 교회를 세울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의 언약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의 일원은 이미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물론 이 분포가 지역적으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는 말이다.(아덴에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별로 없었던 반면 고린도에는 많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진리를 찾다 복음을 접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의 전도를 통해 복음을 접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미 선택된 자들은 그 복음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이 때부터 믿음이 싹이 트고 자라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아주 잘 말씀하고 있는 곳이 사도행전13:48절 말씀이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하게 되고 확인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경배할 목적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즉, 교회는 믿는 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세워지게 되고 예배를 위해 장소를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장소나 장소의 위치를 고집하고 규모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거나 자신들의 수고와 열심이 예수님을 믿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소 선정과 규모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왜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주신 지체들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 말씀을 지키게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어쩌면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말씀으로 그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복음을 듣는 일이 있어야 가르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는 그 곳에 믿는 자의 수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교회마다 그 지역에 있는 택한 백성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 여러 교회가 있다 한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택한 자들까지 심지어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까지 소유 아닌 소유를 위해 분주한 것이 과연 교회가 할 일일까?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주의 백성으로 만족할 수 없어 주변의 다른 교회 지체들까지 흡수 통합하여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얻고자 장소를 옮겨다니며 규모를 무리하게 확장해 가는 행동들이 과연 올바른 태도일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교회의 유익이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자신들의 교회만 성장하면 그것이 교회에 유익이며. 주의 나라를 위한 것이며 주의 뜻을 이룬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들의 행동이 다른 교회에 어떤 아픔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내가 언제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그들에게 해를 가했는가 정 못마땅하면 너희도 악착같이 힘써서 부흥시켜라!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하여서라도 교회를 성장시키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거룩한 열매를 위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하면서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묻고 싶다 무엇이 거룩한 열매인지... 교회의 성장?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어진 예배당? 수많은 교인들? 사회에 줄 수 있는 많은 영향들? 이런 것들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열매이며, 하나님의 뜻일까?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


너희가 우리와 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부흥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거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없어서라고 말이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하고 많은 교인들을 얻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도입하여 시도하고, 많은 물질적 투자(거룩한 낭비)를 앞세워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여서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솔직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상과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교회의 성장의 배경에 주의 말씀이 기초를 이루고 있는지, 정말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고, 이 땅에 세우신 교회의 존재 이유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의 성장과 규모 확장을 위해서는 아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이유와 전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곧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코 멸망 받을 세상을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하고,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든지 감동을 주어서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을 죽을 때까지 따라 다니며 설득하고 가르친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무속 신을 믿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무속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무속 신앙의 본질이 “지성이면 감천”이기 때문이다 .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든 아니 듣든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들은 분명 마침내 심판을 받고야 말 것이다 . 
이들에게 내려진 그 심판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찾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는 자들로 교회를 이루게 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계속해서 부지런히 성경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가르치고, 그 삶을 좇아 살아가게 해야 한다.


여기에 예배당 위치나 규모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믿는 자들의 편의를 위해 최소한의 위치와 규모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이 교회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거의 최종 목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 없이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가? 
예배당의 규모를 고집하고, 장소를 고집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 수 불리는 데만 치중하는 한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될 것이며 진정한 교회의 존재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전글 :   예수님의 영적인 지도력(리더십)
다음글 :   성경 단어나 표현의 의미를 알려면
답변 목록보기


<% if setrepleenable = 1 then %> <% end if %> <% SET objRs = NOTHING : Set board = Nothing : Set util = Nothing %>